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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동영상 목차(주제 : 특별강의-미륵부처님께서 밝히시는 잃어버린 진실된 한민족(韓民族)들의 역사(2013년~2015년))

 

강의 동영상 : 특별강의-미륵부처님께서 밝히시는 잃어버린 진실된 한민족(韓民族)들의 역사(2013년~2015년)

 

 

 

제65회 미륵부처님께서 밝히시는 잃어버린 진실된 한민족(韓民族)들의 역사 : 강의일자 2015년 7월 18일 토 정기법회 

 

 

정기법회
법회일 : 2015년 7월 18일 토
교재 : 프린트물. '진실된 세계의 역사와 종교 上, 下(미륵불 저, 2015)'의 책에 일부 내용이 수록되어 있읍니다.

 

주제 :
3.3.8.7.1.1.1.《선조》(천관파군 1세 분신)와《이순신》(지장보살 2세)
3.3.8.7.1.1.2. 일본군(日本軍)의《조선 왕조(王朝)》침공 실패의 원인
3.3.8.7.1.1.3. 이순신 장군의 죽음
3.3.8.7.1.1.4.《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로 이름한《화신(化神)의 석가모니》의 계략1

공지 : 본 주제에 대한 녹취록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단, 아래는 강의 당시(2013년~2015년)의 프린트물의 내용으로, 아래 내용은 본 주제의 강의가 마친 직후에 내용이 일부 수정되었기 때문에 강의 동영상과 다를 수 있읍니다. 추후 내용들은 메시아이신 미륵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강의 동영상을 통해서 최신의 내용으로 직접 정정하시기 바랍니다.
본 주제에 관한 웹페이지 구축은 2016년 12월부터 조금씩 작업 중이니 이점 양해 바랍니다.
아래 내용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들은 본 홈페이지의 자료실-문서자료이미지 자료, 가장 최근 강의 동영상과 최신 출판된 미륵부처님의 책들을 통해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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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7.1.1.1. [《선조》(천관파군 1세 분신, AD1567~AD1608)와《이순신》(지장보살 2세, AD1545~AD1598)]

 

 

 

《이순신》(AD1545~AD1598) 장군으로 이름한《대마왕》《지장보살 2세》는《한민족(韓民族)》출신의 장군으로서,《신(神)들의 계보》로 볼 때《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름한《대마왕》《노사나불》에게는《손자》가 되는 인물이다. 이러한《이순신》으로 이름한《대마왕》《불보살(佛菩薩)》이신《지장보살 2세》가 같은《신(神)》들의 계보에 있는《할아버지》가 되는《노사나불》의 뜻을 받들지 않고 어찌하여《대마왕》과《대마왕》으로서 서로 상대하여 전쟁을 치르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먼저 설명 드려야겠다.

 

 

 

《노사나불》이《대마왕》불보살로 돌아 앉아《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름하고 태어나기 이전까지는 세세생생《선신(善神)》대열에 있는《불(佛)》,《보살(菩薩)》들을 이끄시던 훌륭한《부처(佛)》의 지위(地位)에 계신 분이었으며, 그의 우주적(宇宙的) 장자(長子)인《지장보살》은《마왕 보살》로서 진화(進化)하여 진정한《보살(菩薩)》이룸에는 뜻을 두지 않고《노사나불》계(系)《대마왕》불보살들을 세세생생 이끌면서《대마왕》불보살 노릇을 하며《지상(地上)》에서 인류 북반구 문명(文明)이 시작된 이후에도《수메르 문명권》과《아카드 문명권》과《이집트 문명권》과《그리스 문명권》등에서《선신(善神)》대열에 있는《불(佛)》,《보살(菩薩)》들과 대결을 일삼던《대마왕》불보살이기 때문에《신(神)》들 간의 대화의 통로는 일찍부터 끊어진 상태이다.

 

 

 

이러한《노사나불》이《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름하고《대마왕》《불보살(佛菩薩)》이 되어 다시 인간 육신(肉身)을 가지고 태어났으나《지장보살 1세》가 인간 육신(肉身)을 가지고 태어났을 때는《염력》으로 그를 움직일 수가 있으나《지장보살 1세》로부터 갈라져 나간《손자뻘》이 되는《지장보살 2세》와는《염력》과 대화의 통로가 끊어져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며,《노사나불》께서《대마왕》《불보살(佛菩薩)》로서 경력이 쌓일 때는《대마왕》《불보살(佛菩薩)》들로서의《염력》과 대화의 통로가 복원되게 되어 있는 것이 이치이다. 이러한 대마왕《노사나불》과《대마왕》《지장보살》이《대마왕》《불보살(佛菩薩)》로서의 관계가 복원이 된 때가《이북 공산당(以北共産黨)》태동 이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차제에 밝히면서 다음 말씀을 드리겠다.

 

 

 

《이순신》장군으로 이름한《대마왕》《지장보살 2세》는《한민족(韓民族)》출신의 장군으로서《조선 백성(朝鮮百姓)》들을 위해서는 사심 없이 최선을 다해 전쟁에 임한 훌륭한 장군이었음을《천상(天上)》도 인정을 하고 있으며, 이때 이후의 반복되는 윤회에서는 진정한《보살》이룸의 길로 들어간 분이었음을《미륵불》이 밝히는 바이며, 이러한《이순신》장군이 겪었던 역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을 말씀 드려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선조 왕》은 당시《영의정》《이산해》(AD1539~AD1609)로 이름한《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 최고의《대마왕신(神)》《비로자나 1세 분신》의 깨우침으로《AD 1598년(선조 22년)》에 3년 후《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이때《이순신》이《대마왕》《지장보살 2세》임도 꿰뚫어 보고《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영의정》《이산해》의 천거로 당시 보잘 것 없는 벼슬에 머물렀던《이순신》을 고속으로 진급시켜《AD 1591년》《이순신》의 나이 47세에《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임명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인사를 단행한《선조》는《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개월 전인《AD 1592년 음 1월》에《원균》(AD1540~AD1597)으로 이름한《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대마왕신(神)》《천관파군 3세》를《경상우도》《수군절도사》로 임명하여 바다를 지키는 두 축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후《AD 1592년 4월》에《임진왜란》이 시작되어 육상에서는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왜군을 막지 못하고 전쟁에 패하여 후퇴를 거듭할 때《이순신》은《옥포해전》과《사천해전》에서 승리한 후《AD 1592년 음력 7월 4일》에《경상우수사》《원균》과 합류한 후《AD 1592년(선조 25년)》《음력 7월 8일》《한산도》앞바다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러《한산대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후 다시《경상우수사》와 합류하여《부산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네 차례의 대첩을 통해 일본 수군은 수로를 통하여 서해 쪽으로 공격하고 군수물자와 병력을 보급하는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며 곡창 지대인 전라도의 침략 또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이를 계기로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의 기세는 꺾이게 된 것이며, 이러한 공적으로《AD 1593년》에《이순신》은《삼도수군통제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진급이 빌미가 되어 이때부터《원균》과의 다툼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이순신》이《삼도수군통제사》가 된《AD 1593년》부터 3년간 이 전쟁에 참여한《명군(明軍)》과《일본군(日本軍)》사이에서는《휴전협정》이 제의되고 지리한 협상이 계속되는 동안 도처에서는 산발적으로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산발적인 전투가《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름한《노사나불》께서《일본》의《한민족계(韓民族系)》인《스키타이》와《구려족》장수들에게 내리신 특별 명령을 수행한 때로써《악마(惡魔)의 화신(化神)》두목들인《비로자나 1세》와《그림자 비로자나 1세》의 후손들이 거주하는《경기도》,《충청도》,《전라도》등지에서 이들의 후손들《150만 명》이상을 학살하고《코》와《귀》를 베어《전리품》으로 한 때인 것이다.

 

 

 

이러한 때 적장《고니시 유키나가》(AD1556~AD1600)로 이름한《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대마왕신(神)》《그림자 비로자나 1세 분신》과《조선 왕조》의《영의정》《이산해》(AD1539~AD1609)로 이름한《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대마왕신(神)》《비로자나 1세 분신》과《이원익》(AD1547~AD1634)으로 이름한《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대마왕신(神)》《그림자 비로자나 2세 분신》등은《악마(惡魔)의 화신(化神)》들인《대마왕신(神)》특성상 서로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 시작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들은 비밀리에 서로가 내통하는 사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이《고니시 유키나가》가《평양성》을 함락한 후 더 이상의 진격은 하지 않고《명군(明軍)》이 개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선조》에게 준 것이 좋은《예》가 된다.

 

 

 

이러한 때 적장《고니시 유키나가》로 이름한《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대마왕신(神)》《그림자 비로자나 1세 분신》은 그와 함께《임진왜란》에 참여한《일본계》《한민족(韓民族)》들인《스키타이》와《구려족》장수들이 장졸들에게 명(命)하여 그의 후손 민족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것을 보다 못해《이순신》장군에게 왜장들의 움직임을 서너 번 상세히 가르쳐 주는 정보(情報)를 제공함으로써 그의 후손들 학살을 막고자 하였으나《이순신》장군은《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고니시 유키나가》가 전하여준 정보가《이순신》장군 산하 수군(水軍)들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술수로 알고 번번이 그가 전해주는 정보를 무시할 동안《악마(惡魔)의 화신(化神)》두목들인《비로자나 1세》와《그림자 비로자나 1세》의 후손들은 죽어간 것이다.

 

 

 

이러한 때마다《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 적장《고니시 유키나가》는《이순신》에게 정보를 흘릴 때마다 그와 내통하고 있는《대신(大臣)》들에게도 똑같은 정보전달을 함으로써《대신》들은 이를《선조 왕》에게 고한 후 조선 조정에서는《이순신》에게 나아가 적과 싸울 것을 종용하였으나《이순신》의 움직임이 없자 차츰《이순신》의 전략을 불신하기 시작하였으며, 마침내는《이순신》에게 왜군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을 강요하게 된 것이나 조정의 요청과는 달리《이순신》은 일본군의 유인 작전에 걸려들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견내량 전선을 유지하고 공격에 신중하게 대처하고자 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이순신》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난이 일게 되자, 결국 이에 화가 난《선조 왕》은 정유년인《AD 1597년》음력 2월 25일에《이순신》으로 하여금《통제사직》에서 해임할 것을 명령하고 후임으로는《원균》에게 직책을 인계하고 한성으로 압송하여 음력 3월 4일에 투옥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이순신》은《사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이순신》장군이 파직이 되어 압송된 원인은《일본계》《스키타이》장수들과《구려족》장수들이《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름한《노사나불》께서《명군(明軍)》개입 이후 내리신 특별 명령 실행을 위해《악마(惡魔)의 화신(化神)》들인《대마왕신(神)》후손들을 그 기간 동안 학살하게 된 것이 원인임을《메시아(Messiah)》이신《미륵불》이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이순신》장군이 파직되기 까지《원균》으로 이름한《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대마왕신(神)》인《천관파군 3세》의 모함도 큰 역할을 한 것이며,《원균》과《이순신》이 따로따로《선조》에게 장계를 올렸을 때《선조》로 이름한《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대마왕신(神)》《천관파군 1세 분신》은《이순신》으로 이름한《대마왕》《지장보살 2세》보다는 같은《대마왕신(神)》인《원균》으로 이름한《천관파군 3세》의 상소를 더 신뢰하고 믿는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라며, 이후《이순신》은《우의정》《정탁》으로 이름한《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대마왕신(神)》《비로자나 1세 분신2》의 상소로 음력 4월 1일에《사형》을 모면하고《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엄연한《역사》의《진실》을 감추기 위해 후대의 기록은《AD 1593년》8월부터 시작된《일본군》과《명군(明軍)》간의《휴전》을 위한 지리한《협상》을 마치 3년간《휴전》이 성립된 것으로 기록하고, 2차 침략인《정유재란》으로 불리우는《AD 1597년》8월 15일 ~ 8월 19일 일본군이 남원전투와 전주성을 대파한 후 전라도 점령과 함께 충청도 직산까지 진격하여 명군(明軍)과 대치하고 있을 때 이때 비로소《일반민(一般民)》들을 학살하고《코》와《귀》를 베어 갔다는 기록만을 남김으로써《이순신》장군의《삼도수군통제사》직을 박탈한 근본 원인을 왜곡하여《백성(百姓)》들을 속이고 있는 파렴치한 기록들을 남겨 놓고 있는 것이다.

 

 

 

 

 

 

3.3.8.7.1.1.2. [일본군(日本軍)의《조선 왕조(王朝)》침공 실패의 원인]

 

 

 

《일본군(日本軍)》의《조선 왕조》침공 실패의 원인 첫째는《도요토미 히데요시》(AD1537~AD1598)로 이름한《한민족계(韓民族系)》《대마왕》《불보살(佛菩薩)》이신《노사나불》께서《조선 왕조》정벌을 위해《일본군(日本軍)》을 출병시켰을 때 일본 국내에는 정권(政權) 탈취를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악마(惡魔)의 화신(化神)》두목 중 하나인《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름한《화신(化神)의 석가모니》가 있었기 때문에《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름한《노사나불》께서 직접《조선 왕조》침공군을 이끌고 참전하지 못함으로써《평양성》에서 진격을 멈춘《고니시 유키나가》(AD1556~AD1600)로 이름한《악마의 화신(化神)》으로써《대마왕신(神)》인《그림자 비로자나 1세 분신》을 제때에 통솔하지 못한 지휘력 부재가 첫 번째 원인이며,

 

 

 

두 번째 원인이《조선》을 침공한《일본》《한민족계(韓民族系)》인《스키타이》장수인《가토 기요마사》(AD1562~AD1611)로 이름한《천왕불 1세》를 비롯한 여타《스키타이》와《구려족》장수들인《한민족계(系)》장수들은《함경도》까지를 완전히 정복하였으나《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름한《대마왕신(神)》《화신(化神)의 석가모니》로부터 밀명(密命)을 받은《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고니시 유키나가》(AD1556~AD1600)로 이름한《대마왕신(神)》《그림자 비로자나 1세 분신》은《평양성》함락 이후 더 이상의 진격은 하지 않고 그들과 내통(內通)하고 있던《의주》에 피난하여 있던《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조선 왕 14대 선조》(재위 AD1567~AD1608)로 이름한《대마왕신(神)》《천관파군 1세 분신》에게 밀사(密事)를 보내 서둘러《명(明)》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명군(明軍)》이 개입하도록 독려하게 된다. 이로써《악마(惡魔)의 화신(化神)》들인《일본 백제계(系)》《대마왕신(神)》들과《조선 왕조》에서 권력(權力)을 쥐고 있던《악마(惡魔)의 화신(化神)》들이 비밀리에 내통(內通)한 것이《조선 정벌》실패의 두 번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세 번째 원인이《조선》《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이순신》장군이 제해권(制海權)을 쥐고 일본 수군(水軍)들을 섬멸함으로써 보급로 차단과 해상(海上) 병력 이동을 막은 것이《조선 정벌》실패의 세 번째 원인이 되는 것이다.

 

 

 

 

 

 

3.3.8.7.1.1.3. [이순신 장군의 죽음]

 

 

 

《이순신》장군이《삼도수군통제사》직을 박탈당하고 백의종군을 하고 있을 때《AD 1597년》음력 7월 16일《삼도수군통제사》지위에 오른《원균》이 이끄는 조선함대가《칠천량 해전》에서 일본군에 대패하여 수군들은 상륙하여 도주하고 판옥선 대부분이 불타거나 왜군에게 노획당하고《원균》은 상륙 후 행방불명이 된다. 이러한 이후《백의종군》하던《이순신》은 다시《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다시 수군을 모아 정비에 들어갔을 때 남은 함선은 고작 12척이었다. 이러한 때 조정에서는 수군을 폐지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이순신》은 고집을 부려 명령을 듣지 않고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 음력 8월 29일《진도 벽파진》으로 옮기고 이곳의 지형을 이용하여《AD 1597년 음력 9월 16일》일본군 수백 척과 교전을 벌려 31척의 일본군 전함을 침몰시켜 해전을 대승으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해전을《명량대첩》이라고 하며, 이러한 이후《이순신》장군은 다시 재해권을 확보하고《명나라》해군 제독《진린》(AD1543~AD1607)으로 이름한《문수보살 3세 분신2》와 함께 뜻을 맞추고 한동안 활동을 하던 중《AD 1598년 9월 18일》《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일본군이 철수를 결정하였을 때 전날《명나라》제독《진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이순신》역시 깊은 고뇌 끝에《명나라군(軍)》과 함께《AD 1598년 11월 19일》노량해협에 모여 있는 일본군을 공격하면서《이순신》장군은 의도적으로 그의 몸(身)을 노출시키고 전투를 지휘하던 중 일본군의 총탄을 왼쪽 가슴 부분에 맞고 쓰러진다.

 

 

 

《이순신》장군은 죽는 순간까지 전열이 흐트러질 것을 우려하여『싸움이 한창이니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숨을 거두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투가《이순신》장군의 마지막 전투인《노량해전》이다.《AD 1598년 9월 18일》《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을 훗날 전해들은《이순신》장군도 이제 일본군과의 전쟁도 끝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고 그때부터《이순신》장군은 깊은 고뇌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이순신》장군 고뇌의 근본은《일본군(日本軍)》《해군(海軍)》주력(主力) 세력 대부분들이《악마(惡魔)의 화신(化神)》들인《대마왕신족(神族)》들의 후손들인《일본 백제계(系)》들이다. 이러한《일본 백제계(系)》들을《26회(回)》의 해전(海戰)을 치루면서《25승》을 하는 동안 총《7만 6천 명》이상을 죽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들이 전쟁이 끝났을 때《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름한《노사나불》이후 새로이《일본》정권(政權)을 잡게 되는《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름한《대마왕신(神)》《화신(化神)의 석가모니》와 내통(內通)을 하고 있는《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조선 14대 선조 왕》으로 이름한《대마왕신(神)》《천관파군 1세 분신》을 둘러싸고 있는《악마(惡魔)의 화신(化神)》들인《대마왕신족(神族)》신료들이 한때 이러한 문제로《이순신》장군을《백의종군》까지 시킨 자(者)들이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마당에《이순신》장군을 그대로 둘 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신 장군은 차라리 전투 중에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이로써 장군은《노량해전》이 있기 하루 전날《명나라》제독《진린》이 다음 날의 전투를 만류하였을 때 이를 듣지 않고 전투에 참여할 것임을《장군》은 그의 일기인《난중일기》에서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장군》의 의로운 죽음이《천상(天上)》에서 볼 때는《보살행(菩薩行)》이 되기 때문에 훗날《미륵불》이 그의 죽음을 기록으로 다시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 이후《장군》은《보살(菩薩)》수행의 길로 들어가서 한때는 2차 세계 대전을 이끌던 유명한《영국》의《처칠 수상》(AD1874~AD1965, 재임 AD1940.5~AD1945.7, 재임 AD1951~AD1955)으로 태어난 적도 있음을《메시아(Messiah)》이신《미륵불》이 밝혀 두는 바이다.

 

 

 

그리고 분명히《메시아(Messiah)》이신《미륵불》이 잘라서 말씀 드리되,《한양 도성》함락과 동시에《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고니시 유키나가》로 이름한《대마왕신(神)》《그림자 비로자나 1세 분신》과《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조선 14대 선조》(재위 AD1567~AD1608)로 이름한《대마왕신(神)》《천관파군 1세 분신》은 곧바로 내통(內通)하였으며《조선》의 남쪽 바다에서《이순신》장군에 의해《일본 백제계》가 주력(主力)을 이루고 있던《일본 수군(水軍)》의 발목이 잡혀《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고니시 유키나가》군(軍)과 합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처음《조선 정벌》을 떠날 때 일본 본토에 있던《악마(惡魔)의 화신(化神)》최고 두목 중 하나인《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름한《대마왕신(神)》《화신(化神)의 석가모니》와《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고니시 유키나가》가 세운 비밀한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됨으로써 그들의 비밀한 계획을 숨기기 위해《조선 왕》《선조》로 하여금《명나라》의 개입을 요청하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고니시 유키나가》군(軍)과《일본계》《한민족(韓民族)》장수들인《스키타이》와《구려족》장수들과는 내막적으로 상당한 갈등을 겪고 있었으며, 이 이후에도《명나라》와 지리한 휴전 협상을 3년간 진행한 것도《고니시 유키나가》의 의도적인 각본이며 이후《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름한《노사나불》의 죽음 이후 재빨리《일본군》을 철수시키게 된 배경에도 이 자(者)의 숨은 노력이 있었음을 분명히 밝혀 두는 바이다.

 

 

 

 

 

 

3.3.8.7.1.1.4.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로 이름한《화신(化神)의 석가모니》의 계략]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름한《한민족계(韓民族系)》의《불보살》이신《노사나불》의 명령으로《조선(朝鮮)》을 침공하기 직전에《악마(惡魔)의 화신(化神)》두목 중의 하나인《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는《고니시 유키나가》를 비롯한《일본 백제계》군단장급 이상과 비밀회합을 주관하면서 다음과 같은 비밀한 지령을 내린다.

 

 

 

첫째,《일본》침공군이《한양》《도성》을 공격하기 이전에《악마(惡魔)의 화신(化神)》들인《조선 14대 선조 왕》을 비롯한《대마왕 신족(神族)》출신 신하(臣下)들에게《일본 백제계(系)》가《임진왜란》에 참전하게 된 목적과 연루된《악마(惡魔)의 화신(化神)》두목 중 하나인《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름한《화신(化神)의 석가모니》의 뜻을 정확히 전달할 것.


둘째,《한양》《도성》함락 이후《일본 한민족계(韓民族系)》인《가토 기요마사》가 군대를 나누어《함경도》로 진격할 때《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고니시 유키나가》는《평양성》에 진출하여 이곳에서 뒤따라《일본》《수군(水軍)》의 주력 세력을 이루고 있는《일본 백제계》《수군(水軍)》세력과 합류함과 동시에《조선》의《14대 선조》치하에 있는《조선군(朝鮮軍)》을 결집시켜 연합군을 편성한 후


셋째,《함경도》로 진격한《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한《한민족계(韓民族系)》장수들에게 공급되는《보급품》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후《고니시 유키나가》군(軍)과 이에 합류한 수군(水軍)과《조선군(朝鮮軍)》이 연합한 군대와《함경도》로 진격한《가토 기요마사군(軍)》과 일전(一戰)을 벌여《가토 기요마사》와 이를 따르는 군(軍)을 궤멸시킨 후 뒤이어《한반도(韓半島)》에 거주하는《한민족(韓民族)》들을 씨알도 남기지 말고 학살할 것.


넷째, 이러한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이 될 때 일본 본토에서는《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도쿠가와 이에야스》가《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름한《노사나불》을 제거한 후《가마쿠라 막부》를 장악한다.

 

 

 

이와 같은 4가지 비밀한 계획을 가지고《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고니시 유키나가》를 비롯한《일본 백제계》가《조선(朝鮮)》침공에 나선 것이나 조선의 남해안에서《이순신》장군에 의해《일본 수군(水軍)》의 발목이 잡힘으로써《악마(惡魔)의 화신(化神)》《고니시 유키나가》가 계획하였던 전략에 차질이 생김으로써《고니시 유키나가》는 서둘러 같은《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조선 왕》《선조》에게《명군(明軍)》개입을 간청하도록 한 것이다.

 

 

 

이와 같이《명군(明軍)》이 개입되자《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름한《노사나불》은 이들의 계략을 눈치 채고《역(逆)》으로 특별 명령을 내려《악마(惡魔)의 화신(化神)》들인《대마왕신족(神族)》들의 후손《150만 명》이상을 학살한 것이다. 이러한《악마(惡魔)의 화신(化神)》인《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름한《화신(化神)의 석가모니》가 세운 계획 중《한반도(韓半島)》에 거주하는《한민족(韓民族)》들을 씨알도 없이 학살하고자 하였던 엄청난 계획이 빌미가 되어《조선 왕조》《15대 광해왕》때《한반도(韓半島)》에 거주하는《악마(惡魔)의 화신(化神)》들인《대마왕신족(神族)》들의 후손들인《호족 세력》들을 모두《캄차카 반도》로 추방시키고자 하는 계획이 수립되었으나 이를 막고자《악마(惡魔)의 화신(化神)》들인《대마왕신족(神族)》들이 반복(反復)되는 윤회(輪廻)로 대거 태어나서 결사적으로 이를 막음으로써《광해 왕》의 뜻이 좌절된 적이 있는 것이다.